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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재잘재잘 ♠

데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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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나를 비추는 모든 가면과 거울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힘겹다. 마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향해 손을 계속해서 뻗는 것만 같다. 그 과정은 모든 것이 말라버린 한 겨울에 차디찬 바람을 맞는 나무처럼 고독하고 외롭기도 하다. 때론 지금까지 내가 딛고 서 있던 이 세계가 옳은 것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기도 한다. 바로 싱클레어처럼 말이다.

싱클레어는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을 마주한다. 데미안의 영향력에 굴복하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그에게서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혀왔던 악의 세계로부터의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마주함으로써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고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신비로움을 가득 풍기는 데미안에게 내가 점점 더 다가갈수록 싱클레어가 마주했던 데미안이 다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싱클레어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싱클레어가 바라는 자신이 모습이 바로 데미안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 그 어느 곳도 아닌 중간쯤에서 멀뚱히 서있던 그 시점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난 것이다. 나도 끊임없이 나의 데미안을 찾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의 데미안을 원하고 있다. 본래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나의 데미안은 언제쯤 나를 찾아올까, 언제쯤 마주하게 될까.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마음도 이것과 같을까. 뒤를 돌아보자.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이미 나에게 와서는 내 등 뒤에서 내가 자신을 바라봐주길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어쩜 나의 데미안도 그럴지도 모른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데미안은 이미 나에게 와 있을지도 모른다. 내 데미안도 결국 내 모습일 뿐 이다. 지금 나와 다른 숨소리를 내는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화려함에 눈길을 뺏긴 채 정작 내 마음의 물결 소리 하나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했다. 꿈속에서처럼 나는 데미안의 목소리에, 그의 영향력에 굴복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내 자신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모든 것을 아는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내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더 명확하게 아는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결국 데미안은 다른 누구 아닌 이었을 뿐이다.





*

시간에 쫓겨 80쪽 가량 읽고 쓴 글. 다시 읽어보려고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데미안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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