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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재잘재잘 ♠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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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의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물음을 받았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만큼 정의는 단정 짓기 어려운 개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에 정의로운 사람, ‘정의에 어긋나는 것 등 으로 정의라는 개념을 흔히 쓴다. 그만큼 정의라는 것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어째서 정의는 여러 겹의 껍질 안에 숨어 자신을 내비치지 않는 걸까. 이제 우리는 그 껍질을 한 겹 두 겹 벗겨낼 필요가 있다. 의문의 한 겹을 벗겨 내보자. 과연 정의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우리는 정의를 향해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것인가?



정의(正義)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바른 의의. 철학적으로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 이 책에서는 철학적 관점으로 정의에 대해서 접근해나간다. 마이크 샌델은 행복, 자유, 미덕 이 세 가지 방식으로 정의를 이해하면서 이 세 가지 방식을 통해서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의 선에 대해 이성적으로 다가간다.



먼저 정의를 행복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벤담은 공리주의를 주장했다. 벤담이 말하는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옳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이며 모든 도덕적 주장은 반드시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려는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고통을 무시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또한 모든 문제를 쾌락과 고통으로 나누어 이분법적으로 사고해버리고 정의와 권리를 계산하려고 하며 인간의 가치를 단 하나의 측정방식만으로 판단해버리려 한다. 한 예로 필립 모리스의 흡연연구를 들 수 있다. 필립 모리스는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의 인상을 막고자 흡연이 국가 예산에 미치는 비용과 편익을 연구했다. 그 결과 비록 흡연이 흡연자들이 생존할 시에는 의료비를 증가시키지만 결국에는 일찍 죽기 때문에 오히려 예산 절감 효과를 준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는 공리주의적 사고의 오류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 사람이 고통 받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행동이고 정의로운 선택일 것인가. 그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당연한 자유를 억누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여긴다. 자유시장체제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를 누린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소유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해답을 찾는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자신의 신체와 목숨을 소유했다면 어떤 목적과 어떤 위험에 처하더라도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자기 소유이며 나아가 선택의 자유이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함으로써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자유지상주의 또한 의문점을 품고 있다. 자유시장체제에서 진정 개인의 선택이 자유롭냐는 것이다. 징병제와 자원군제가 하나의 예로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한다면 징병제는 강제적이고 자원군제는 자율적이다. 하지만 자원군제가 자유라고 일컬을 수는 없다. 실제로 자원군 체제 하에서 군에 입대한 이들 중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며 교육수준 또한 높지 못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경제적 조건에서 불리할 수도 있는 임의성을 가지고 있는 시장논리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라는 것은 어쩌면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똑같이 출발할 수는 있지만 그 출발선의 위치가 각기 다르다면 그 달리기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자유의 방식으로 정의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결국에 우리는 미덕으로 정의를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하는 것으로 권리를 정의하려면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행위의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그 목적에 부합하여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분배해주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냐는 것은 미덕과 관련해 정의를 이해하는 것에 대해 본질과도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정치의 목적은 무엇일까? 정치로 공동의 선과 정의로 나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공동선과 정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의 목적이 좋은 시민을 길러내고 좋은 자질을 키워내는 것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뒤따라 정치의 목적은 곧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이 공동의 선과 정의에 대해 서로 고민하고 공동체에 대해 염려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곧 이 책의 의미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시장논리사회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공리주의나 자유시장주의는 정의를 보다 확실하게 이해시킬 수 없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유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의 위치가 어느 한 순간에 바뀔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자유시장체제가 가지고 있는 임의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지극히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진정한 정의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보다 모두를 위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는 미덕을 갖춘 시민들에게서 습관적으로 우러나오는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대의식으로 둘러쌓인 사회 속에서의 불평등과 불의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한 번 내게 묻는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지만 아직도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내 자신이 만족할 만한 명확한 답변을 내리지 못한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해 분명하고 명료한 답을 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파헤치는 정의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내 사고력의 범위가 한 층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앞 쪽에서의 내용들을 지나치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맞춰지지 않던 하나의 퍼즐이 완성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끝을 향해 갈수록 나는 정의에 대한 내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 나갔다.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의에 관한 물음이 주어지고 그것과 일대일로 정확히 대응되는 답을 찾는 것보다 정의에 대해 내 나름대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의 고리들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떤 한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사고하다보면 내 고유의 논리와 신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 신념은 다른 이들의 신념과 어우러져 하나의 미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글의 끝머리에 물음표를 던져보겠다.



"당신의 정의는 결국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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