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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재잘재잘 ♠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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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소리

째깍째깍. 오늘 밤도 너는 잠들지 않은 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든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 그 시간, 그 공간 속에서 오직 너만이 숨을 내쉬고 있다. 그 어떤 소리도 맴돌지 않은 채 고요함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그 시간에 오직 너만이 살아있다. 네가 내는 시계 침 소리만이 고요함을 깨어보기라도 하려는 듯 수줍게 울려 퍼지는 있는 이 밤. 째깍째깍. 네가 내는 그 시계 침 소리가 내 단잠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난 그 소리를 싫어하고는 했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누워 스스로 내 귀를 닫을 때면 너의 그 소리는 제멋대로 내 안에 들어왔었다. 노크도 하지 않고서 네 맘대로.


항상 내 머리맡 옆에 있는 너지만 너 하나쯤이야 없어도 크게 달라질 것도 크게 불편할 것도 없을 거야.’


그래서 어느 날은 내 머리맡에서 너를 저 멀리 떠나보냈다. 째깍째깍. 날 방해하던, 날 쓸데없이 에워싸던 너의 그 소리가 마침내 사라진 그 공간인데 어째서 편하지 않은 걸까. 날 못내 붙잡고 있던 너에게서 마침내 벗어났는데 왜 개운하지 않은 걸까. 넌 이미 내 일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 손목에 있는 시계처럼.

손목시계를 새로 산 이후로 내 손목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항상 낯설었다. 내게 손목시계는 무언가가 내 목을 조이는 것 같은 족쇄 같았고 묘한 불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불편함은 서서히 익숙함이 되었고 내게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그렇게 손목시계가 온전히 나의 일부가 된 어느 날, 어쩐 일인지 난 손목시계를 깜빡하고 나와 버렸다. 그 날 난 하루 종일 습관이 되어버린 어떤 것을 거스르는 허전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 허전함 때문에 빈 손목을 종일 아무 이유 없이 만지작거렸다.

사발시계 너의 그 소리는 내 손목시계와 같았던 것이다. 째깍째깍. 너의 이 소리가 소음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네 소리는 날 방해하는 소음이 아니라 네 숨소리였던 것이다. 햇빛이 비추든, 어둠이 모든 것을 삼키든 너는 항상 네 숨소리를 내어 왔다. 너의 그 숨소리는 온전히 내 일부가 되어버렸다. 결국에 난 며 칠 지나지 않고서 다시금 널 내 머리맡 옆에 내려놓았다. 째깍째깍. 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옆에서 숨을 내쉬고 있다.

어쩜 다 똑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 손목시계가, 너의 그 숨소리가 자연스레 내 습관이 되어 버렸던 것처럼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일부가 되어버렸던 건지도. 지금 내 손길을 거치는 모든 것들이 이미 나의 한 부분일 것이다. 사발시계 너의 그 숨소리가 쉽사리 빛을 내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나의 것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나의 것들은 언제나 항상 내 안에 있어왔기 때문에 나는 그 빛을 굳이 보려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날 비춰주곤 했다. 터벅터벅 밤거리를 걸어갈 때마다 줄지어 서있는 가로등 불빛처럼 말이다. 내 숨소리와 함께 사발시계의 숨소리도 곁들여 들리는 밤이다.



째 깍 째 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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